○ 시인의 바다/•··시인의 바다

흔적 1

그·림·자 2009. 5. 20. 00:01
네거리 횡단보도 아스팔트 위에 한 사내가 모로 누워 있다 (실은 여자였는지도 몰라) 아니다, 누워 있는 것은 흰 페인트로 그린 그의 윤곽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탈피를 하였던 것일까 비 마악 그친 뒤 햇빛 쏟아져내릴 때 맞아, 저 빌딩 창에 반사되어 날을 세운 빛이 그의 비상을 재촉하였을 거야 비에 젖은 옷 훌훌 벗어버리고 그는 여기서 처음 날개를 폈던 게지 탈피의 고통으로 군데군데 핏자국이 번져 있다 나비 되어 날기 위해서는 몇 개의 허물을 더 벗어야 하는 것일까 몰려나온 개미들이 걸음을 멈추고 사내가 남겨놓은 껍질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 그가 걸어온 세상의 모든 길이 물결치는 차량들 위에서 잠시 일렁거렸다 황상순『문학과창작』(2004년 겨울호) Evol - Das Gemiedene Schl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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