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글이었다 진전 없는 반복, 한 사람의 생 읽어내느라 소모된 시간들, 나는 비로소 문장 속으로 스며
서, 이 골목 저 골목을 흡흡, 냄새 맡고 때론 휘젓고 다니며, 만져보고 안아보았다, 지루했지만 살을 핥는 문
장들, 군데군데 마지막이라 믿었던 시작들, 전부가 중간 없는 시작과 마지막의 고리 같았다, 길을 잃을 때까
지 돌아다니도록 배려된 시간이, 너무 많았다, 자라나는 욕망을 죄는 압박붕대가 너무, 헐거웠다, 그러나 이
상하다, 너를 버리고 돌아와 나는 쓰고 있다, 손이 쉽고 머리가 맑다, 첫 페이지를 열 때 예감했던 두꺼운 책
에 대한 무거움들, 딱딱한 뒷표지를 덮고 나니 증발되고 있다, 숙면에서 깬 듯 육체가 개운하다, 이상하다,
내가 가벼울 수 있을까, 무겁고 질긴 문장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버리고 돌아오다
나는 벼룩을 사랑하였고 벼룩을 사랑하는 지네의
지저분한 다리들을 사랑하였다 나는 푸른 곰팡이가
피어난 밥을 맛있게 먹어댔고 쓰레기통에 버려진, 깨진
달걀과 놀아났다 나는 남들이 피우다 버린 꽁초를 주워
사랑을 속삭였고 징그러운 비단뱀이 버리고 간 허물을
껴안고 환하게 웃었다 나는 말라죽은 화분의 누런 잎과
간통하였고, 나는 텅 비어 있는 액자를 모셔놓고,
오! 나의 사랑이여, 헤프게 헤프게 고백을 하였다
너의 말을 듣고 있는 나 수치스러워
그 말을 하는 너 얼마나 행복했을까
내 양 귀를 찍찍 뜯어 창밖으로 집어던진다
비 오는 골목에서 내 귀야, 수천의 알을 까서
벼룩처럼 힘찬 뒷다리로 껑충껑충 뛰어서
지네처럼 자잘한 다리들로 스멀스멀 걸어서
그의 방 창 밑에 모여들어
못다 한 그의 말, 끝까지 들어주렴
나는 때로 천천히 걸었다 필요한 말 듣기 위해서였다
나 빨리 걷기도 했다 피곤한
너 좀더 일찍 귀가하도록
동행한 줄 알았던 너 난간 너머에서
거울에 비친 벼룩을 사랑하고
말라죽은 화분의 누런 잎을
자갈처럼 물고서 낄낄낄 이야기하고 있다지
이 말을 듣는 나 이만큼 즐거워
그러고 있는 넌 얼마나 행복하니
비가 오는
네 집 앞 골목,
영글은 몸뚱이를
치덕거려야지
흙탕 속에
숨었다가,
네가
지나가면
몸을
동그랗게
말아올려야지
야, 너무 이쁜 뱀!
너는 내 허물을 보고
기뻐할
거야
김소연 시집『극에 달하다』(1996)
Nathan Milstein plays Bach Chaconne (Part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