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의 바다/•··시인의 바다

11월의 숲

그·림·자 2005. 11. 6. 07:05

여러 참나무들의 군락을 가로질러 갈 때 옛사람 생각이 났다 나무들은 무엇인가를 보여주려고 자꾸 몸을 뒤지고는 하였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길쭉하거나 둥근 낙엽들의 기억에 관한 것밖에는 없다 나는 내가 아는 풀꽃들을 떠올린다 천천히 외워보는 지난 여름의 그 이름들은 그러나 피어서 아름다운 순간들에만 해당한다 가끔 두고 온 집을 돌아보기도 하지만 한때의 정처들 어느덧 숲이 되어가는 폐가들 일찍 찾아온 저녁의 기운에 낙엽 하나가 잔 햇살을 보여주기도 감추기도 하며 떨어진다 사람들은 그 규칙을 궁금해하지만 지금은 낙하의 유연함을 관람하기로 하는 때 그리하여 나는 끝없이 갈라진 나뭇가지의 몸들을 만지며 내가 걸어가는 11월의 숲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할 뿐이다 심재휘 시집『적당히 쓸쓸하게 바람부는』(문학세계사, 2002) Jacintha - Autumn Lea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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