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의 바다/•··시인의 바다

추억에 대한 경멸

그·림·자 2009. 6. 13. 13:30
손님이 돌아가자 그는 마침내 혼자가 되었다. 어슴푸레한 겨울 저녁, 집 밖을 찬바람이 떠다닌다. 유리창의 얼음을 뜯어내다 말고, 사내는 주저앉는다. 아아, 오늘은 유쾌한 하루였다, 자신의 나지막한 탄식에 사내는 걷잡을 수 없이 불쾌해진다, 저 성가신 고양이 그는 불을 켜기 위해 방안을 가로질러야 한다. 나무토막 같은 팔을 쳐들면서 사내는, 방이 너무 크다 왜냐하면, 하고 중얼거린다, 나에게도 추억거리는 많다. 아무도 내가 살아온 내용에 간섭하면 안 된다. 몇 장의 사진을 들여다보던 사내가 한숨을 쉰다. 이건 여인숙과 다를 바 없구나, 모자라도 뒤집어쓸까 어쩌다가 이봐, 책임질 밤과 대낮들이 아직 얼마인가 사내는 머리를 끄덕인다, 가스레인지는 차갑게 식어 있다. 그렇다, 이런 밤은 저 게으른 사내에게 너무 가혹하다. 내가 차라리 늙은이였다면! 그는 사진첩을 내동댕이친다. 추억은 이상하게 중단된다, 그의 커다란 슬리퍼가 벗겨진다. 손아귀에서 몸부림치는 작은 고양이, 날카로운 이빨 사이로 독한 술을 쏟아 붓는, 저 헐떡이는, 사내 기형도 시집『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 1991) Rene Aubry - Quinte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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