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읽기의 혁명 맹목적인 신문 읽기는 차라리 신문을 읽지 않느니만 못하다
- 머리말
"신문을 읽지 않으면서부터 실로 마음이 편해지고 기분이 좋다. 사람들은 남이 하는 일들에만 관심을 갖고 자신의 중요한 의무는 아주 쉽게 잊는다." - 괴테 "신문을 읽지 않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연에 눈을 돌려 그것을 통해서 신을 보기 때문이다." - 소로우
···· 맹목적인 신문 읽기는 차라리 신문을 읽지 않느니만 못하다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믿음이다. 만일 독자들이 그저 습관적으로 신문을 읽고 있다면, 그리고 매일매일 아침마다 잠에서 깨어난 자신의 맑은 영혼 깊숙이 신문 활자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이는 비단 대문호들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비극임에 틀림없다.
···· 무릇 삶이란 끊임없는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다. 중요한 것이든 사소한 것이든 간에 우리는 언제나 무엇인가를 선택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결정을 자신의 판단에 의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차분히 한번 돌이켜보라. 자신의 선택과 결정이 과연 얼마나 독자적인 것이었나를. 혹 그 판단 자료의 대부분이 언론에 의해 주어졌거나 영향받은 것은 아니었던가. 신문보도에 의해 비로소 사회적 사실들을 알게 되고, 바로 그러한 '사실들'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는 엄연한 현실을 우리는 너무 쉽게 망각하는 것은 아닌가.
- 여는글 / 당신은 성숙한 독자인가?
당신은 과연 신문을 제대로 읽고 있는가? 만일 당신이 새로운 사실들을 보도하는 기사들의 집합쯤으로 신문을 인식하고 있다면 서슴지 않고 단언할 수 있다. 당신은 신문을 전혀 읽을 줄 모르는 독자라고. 혹 어느 신문독자가 기사 사이사이에 숨어있는 행간(行間)의 의미를 읽어내는 안목을 자부한다고 해서 스스로를 고급 독자라고 여긴다면, 그것 또한 오산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신문 바로 읽기'의 핵심은 신문이 '살아 움직이는 생물'임을 꿰뚫어볼 수 있어야 한다는 데 있다. 이는 단순히 신문 활자(活字)의 문자새김이 '살아있는 글자'라거나, 살아 펄펄 뛰는 생선처럼 싱싱한 최근의 뉴스를 담고 있는 것이 신문이라는 따위의 차원에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첫째 의미는 , 신문이 우리들의 일상생활 구석구석에서 개개인의 삶과 긴밀하게 얽혀 생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오늘날, 신문은 우리들의 삶에서 의식주에 버금가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기업체의 말단 샐러리맨 책상에서 청와대의 대통령 집무실에 이르기까지 어김없이 신문은 자리하고 있다. 아침에 신문을 들춰보며 주요 사회적 문제들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과가 되었거니와, 특정 사회 현실에 대한 자신의 견해나 판단조차도 알게 모르게 신문의 영향을 닫기 십상 이다. 현대인의 신문의좆도은 어쩌면 '의존'이 아니라 '종속'이라는 표현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예컨데, 주요 신문들이 그날의 1면 머릿기사고 무엇을 다루는가는 한 사회가 전개되어가는 데 우리의 짐작 이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론을 따라 1면 머릿기사가 정해지기도 하지만 신문의 머릿기사에 따라 여론이 흘러가는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에서 그 의미를 보다 실감할 수 있을 터이다. 물론 이는 대중매체 자체가 쌍방이 아닌 일방적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반 대중들이 언론 생산에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함으로써 언론이 설정한 사회적 의제에 수동적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는 탓이기도 하다. 이러함에도 대다수 사람들의 신문에 대한 이해가 거의 '백지 상태'에 가깝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다. 가령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신문 보는 행위를 단순히 '기사 읽기'로만 여기고 있거나, 신문기사 내용을 무조건 고정불변의 객관적 사실로 생각한다. 가연 신문이 전달하고 있는 정보를 그대로 믿어도 좋은 것일까라는 원초적 질문은 전혀 제기되지 않는다. 이는 신문을 살아 움직이는 생물로 보지 않고 한낱 죽어 있는 대상으로 여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로부터 신문 오독(誤讀)은 시작된다. 신문이 제시하는 사고의 틀, 삶의 테두리 속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이 굴레를 꿰�어보지 않고는 '신문 바로 읽기'란 요원한 일이다. ····
첫째마당 편집을 읽어야 기사가 보인다
"저널리즘의 힘은 크다. 세계를 설득할 만한 유능한 편집자는 모두 세계의 지배자가 아니겠는가." - T. 카알라일 "먼저 사실을 붙잡으라. 그리고 마음대로 곡해하라." - M. 트웨인
1. 신문편집 / 기사 읽기의 열쇠
···· 우리가 매일 보는 신문은 편집이란 과정을 통해 걸러진 사실을 전달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취사 선택의 과정이기도 한 편집에는 따라서 당연히 가치 판단이 스며 있게 된다. 가치 판단이 빠진 편집이란 애초부터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 신문독자든 방송시청자이든 편집을 통해 걸러진 내용을 제대로 분별해 내지 않으면, 한 편집자의 가치 판단에다 자신의 머리를 고스란히 내맡기는 꼭이 되고 만다. ····
2. 신문편집과 현실 그림
···· 한 신문만을 구독하면 그 신문의 보도대로 삶의 현실을 인식할 경우 그 신문의 편집방향에 독자들은 세뇌될 수밖에 없다. 이는 물방울이 한 방울 한 방울 계속 떨어져 마침내 바위를 뚫는 이치와 같다.
3. 신문편집의 '3원색'
···· 편집기자는 날마다 가로 39cm 세로 54.5cm의 백지 위에 그날의 주요 기사와 사진을 갖고 정치 현실 이나 사회 현실의 그림을 그려나간다. 물론 그 그림은 예술가적 상상력이나 영감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는 점에서 냉정한 지면 설계를 요구한다. 기사 하나 하나, 사진 한장 한장, 표제 하나 하나마다 정확한 가치판단을 담아야 한다. 기사·사진·표제라는 편집의 3원색으로 그림을 그려가지만, 그 그림을 그려가는 정신은 다름아닌 가치판단이다. 그 가치판단을 지면에 담아내는 신문의 최전선, 바로 그곳이 편집국 편집부이다.
4. 편집국의 심장 / 편집부
흔히 언론계에서 편집부를 '편집국의 심장'으로 비유한다. 사람의 몸 속의 모든 피가 심장에 모인 다음 다시 모든 기관에 보내지듯이. 모든 기사가 편집부로 모아져 편집된 다음 인쇄 과정에 들어가 모든 독자 에게 보내지는 까닭이다. 따라서 편집부는 어는 신문사든 직제상 '수석 부서'라는 말을 듣는다. 실제로 모든 신문의 조직기구표 에서 볼 수 있듯이 편집부는 가장 맨 위에 자리하고 있다. 편집부 안에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각 지면을 맡고 있는 기자들이 있기에 편집부는 사실상 하나의 '축소된 편집국'이기도 하다. ····
둘째마당 지면은 평면이 아니라 입체다
"유럽의 평화는 한 타스의 편집자를 교살함으로써 유지될 것이다" - O. 비스마르크
1. 지면과 지면 사이 읽기
2. 신문편집과 정치권력
"모든 사람들이 신문을 받아보고 그것을 읽을 능력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만약 나에게 신문없는 정부 든가, 혹은 정부 없는 신문이든가, 그 둘 중 어느것을 취하겠는가 하고 결단을 촉구한다면, 나는 일순의 지체없이 후자를 선택할 것" - 제퍼슨 (야당 지도자 시절) "신문에 난 것은 아무것도 믿을 수 없다. 진실 그 자체는 오염된 전달 수단에 실림으로써 의심스럽게 된 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거짓과 오류로 가득찬 마음을 가진 사람들 보다 더 진리에 가까운 사람이듯 이, 나는 전혀 신문을 읽지 않는 사람이 신문을 읽는 사람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한다." - 나폴레옹
3. 1판과 5판 사이의 독법
4. 신문편집과 광고
우리가 매일 지면에서 대하는 신문광고는 정치권력 못지않게 신문편집을 좌우한다. ····
신문 지면의 하부구조를 담당하는, 편집국 못지않게 신문자본이 중요하게 여기는 핵심부서가 광고국이다. 아니 신문 자본의 경우 편집국보다 광고국을 더 중요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광고도 뉴스다" - 장기영 (한국일보 창업자) "나는 신문이 나오면 먼저 아랫도리부터 본다." -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
신문자본이 이처럼 광고에 최우선적으로 관심을 두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어느 신문이든 신문을 판매해서 얻는 수입은 신문 전체 매출액 가운데 지극히 적은 부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신문 판수를 고장 표기하는 것도 판매부수가 큰 신문이 광고효과도 당연히 클 것이므로 광고 수주나 단가 책정에서 유리한 때문이다.
·· 80년대 중반 이래 한국신문업계에서 최고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조선일보]의 경우 에도 판매수입이 겨우 15%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광고에 의해 유지되고 있으므로 광고주들 전체의 일반적인 목적과 욕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 프랭크 스탠톤 (전 CBS 사장)
···· 광고주들의 영향력이란 측면에서 보면, 그들이야말로 어쩌면 진정한 권력일는지 모른다. 이들은 신문편집에 정치권력 이상의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면서도 일반 독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는 점에서 '숨은 권력'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신문편집의 경제학은 편집의 정치학과 만난다.
···· 신문이 그렇게 단순한 사기업(私企業) 이상의 의미가 없다면, 우리가 언론의 자유다 뭐다 해가면서 굳이 신문에 온갖 특혜와 배려를 할 이유가 없다는 점 또한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겠다.
손석춘『신문 읽기의 혁명』(개마고원, 2003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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