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좀 어리섞어 보이더라도
침묵하는 연습을 하고 싶다
그 이유는 많은 말을 하고 난 뒤일수록
더욱 공허를 느끼기 때문이다
많은 말이 얼마나 사람을 탈진하게 하고
얼마나 외롭게 하고 텅비게 하는가?
나는 침묵하는 연습으로
본래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
내 안에 설익은 생각을 담아두고
설익은 느낌도 붙잡아 두면서
때를 기다려 무르익히는 연습을 하고 싶다
다 익은 생각이나 느낌 일지라도
더욱 지긋이 채워 두면서
향기로운 포도주로 발효되기를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란다
침묵하는 연습
비록 내 안의 슬픔이건 기쁨이건
더러는 억울하게 오해받는 때에라도
해명도 변명조차도 하지 않고
무시해버리며 묵묵하고 싶어진다
그럴 용기도 배짱도 지니고 살고 싶다
유안진 수필집『그리운 말 한마디』(1987)
그의 부재에서 나는 우리 둘 사이의 공간을 채웠던 것이 말이었음을 알았다
그를 만나 말이 많았다
...그리고 ... 텅 비어 버렸다
끊임없이 말을 생산해야했던 우리의 만남
사람이 그리운 이는,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그리운 것이다
사람을 보자 말을 쏟아내었고,
말을 쏟아내는 동안 시간은 흘렀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나는 텅 비어 비어 버렸다
사람도 말에 쓸려나가, 말을 가득 안은 사람은 무겁게 걸음을 돌렸다
말도 사람도 자리에 없다
또 침묵한다
말이 채워질 때까지
사람은 마치 말을 들으러 온 것처럼
사람은 마치 말을 하려 만났던 것처럼
말이 사라지자, 사람도 사라진다.
그가 사라졌다
서투름...
사는 것을 다시 배워야 한다
많은 말이 우리를 얼마나 춥고 허기지게 하느냐!
이춘방 (책 만드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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