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의 바다/•··시인의 바다

편지

그·림·자 2012. 3. 25. 22:57

이제는 부끄럽지도 슬프지도 않습니다. 모든 사물의 뒤, 詩集과 커피잔 뒤에도 막막히 누워 있는 그것만 바라봅니다. 정처 없던 것이 자리잡고 머리골 속에서 쓸쓸함이 중력을 갖고 쓸쓸함이 눈을 갖게 되고 그래서 볼 수 있습니다. 꽃의 웃음이 한없이 무너지는 것을 밤의 달빛이 무섭게 식은땀 흘리는 것을 굴뚝과 벽, 사람의 그림자 속에도 몰래몰래 내리는 누우런 황폐의 비 그것이 살아 있는 모든 것의 발바닥까지 어떻게 내 목구멍까지 적시는지를 눈 꼭감아 뒤로 눈이 트일 때까지, 죽음을 향해 시야가 파고들 때까지 아주 똑똑히 볼 수 있습니다. 내 속에서 커가는 이 치명적인 꿈을. 그러면서 나의 늑골도 하염없이 깊어지구요. 최승자 시집『이 시대의 사랑』(문지, 1981) Dustin O' Halloran - Form Is D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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