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의 바다/•··시인의 바다

사랑과 운명

그·림·자 2007. 7. 12. 12:37
갈 수 없어 못 갔겠습니까 이런 세상에 꽃피는 사랑과 종말에 대해 내 어찌 청맹과니로만 살았겠습니까 가슴 한 귀퉁이 무너지는 눈물이 없어 돌아섰겠습니까 그곳은 차라리 길이었으므로 갈 수가 없습니다 길은 붙잡을 수 없으니 내 어찌 무어라도 붙잡기를 바라겠습니까 이런 세상의 사랑과 종말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모를 리 있겠습니까 이미 존재하는 길은 머무는 길입니다 머물러 할 수 있는 일은 소유하는 일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나날은 열겹 스무겹 자신을 방어해야 할 뿐 이내 사랑은 식은 찻잔처럼 저물고 오직 머무름의 안락이나 되돌아보는 휴식에 노을은 지고 맙니다 아아 설사 내 모든 것이 잘못된다 해도 한파처럼 엄습해올 외로움을 견디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유혹을 내 어찌 떨쳤겠습니까 운명을 믿지 않으나 사랑에 대해서는 운명이랄밖에 달리 무어라 하겠습니까 가슴 미어지는 나날을 택했습니다 꽃피듯 한번씩 돌아오겠지요 다함이 없는 그리움으로 돌아오겠지요 백무산 시집『인간의 시간』(1996) Gidon Kremer - Obliv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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